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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름, 항렬

안동 김씨 항렬표와 족보의 역사

by st공간 2025.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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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김씨 항렬표와 족보의 역사

한국의 성씨 문화는 단순한 이름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성씨와 본관은 혈통과 뿌리를 이어주는 표식이며, 가문의 항렬표와 족보는 조상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계보를 정리해주는 중요한 유산입니다. 그중에서도 안동 김씨(安東 金氏) 는 조선 시대를 넘어 한국 역사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명문 가문으로 꼽히며, 오늘날에도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성씨 집단입니다.

2015년 통계에 따르면 약 52만 명이 안동 김씨에 속하며, 이는 전체 본관별 인구수 15위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구(舊) 안동 김씨와 신(新) 안동 김씨가 존재하며, 각각의 시조와 계보가 다릅니다. 이 글에서는 구·신 안동 김씨의 역사적 배경과 항렬표를 상세히 정리하고, 족보의 의의를 살펴보겠습니다.


구(舊) 안동 김씨의 역사

구 안동 김씨는 흔히 상락 김씨, 선(先) 안동 김씨 라고도 불리며, 그 뿌리는 신라 왕족으로 이어집니다. 시조는 김숙승(金叔承) 으로, 그는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손자였습니다. 고려 초기에 평장사공으로 봉해졌고 안동 지역을 근거지로 삼으면서 가문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중시조는 충렬공 김방경(金方慶) 입니다. 그는 경순왕의 8대손으로, 삼별초를 평정하고 고려 도원수를 지냈으며, 공로로 상락군 개국공에 봉해지고 안동을 식읍으로 받았습니다. 김방경 이후 후손들은 21개의 파로 갈라졌으며 현재는 13파가 존속합니다. 그중에서도 제학공파(김익달), 안렴사공파(김사렴), 익원공파(김사형) 의 세 파가 인구의 60~70%를 차지하여 흔히 ‘제안익 3파’ 로 불립니다.

조선시대에 들어 구 안동 김씨 가문에서는 수많은 인물이 배출되었습니다. 진주대첩의 영웅 김시민(金時敏), 후금 정벌군의 장수로 명나라로부터 백작 작위를 받은 김응하(金應河)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모두 충무공의 시호를 받았으며, 충절과 무공으로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중에도 구 안동 김씨 출신이 많습니다. 특히 백범 김구(金九) 선생이 바로 이 계통에서 나왔습니다. 따라서 구 안동 김씨는 충과 효, 그리고 항일 정신을 이어온 가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新) 안동 김씨의 역사

신 안동 김씨는 장동 김씨, 후(後) 안동 김씨 라고도 불립니다. 시조는 고려 개국 공신 김선평(金宣平) 입니다. 그는 신라 말 고창군(지금의 안동)의 성주로,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를 물리친 공로로 고려 건국에 기여했습니다. 그 공으로 삼한벽상공신에 책봉되었으며, 최고위 작위인 태사(太師)까지 올랐습니다.

조선시대 신 안동 김씨 가문은 더욱 번성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수많은 정승과 판서를 배출했으며, 특히 순조의 장인 김조순(金祖淳) 이후로는 왕실과의 혼인 관계를 통해 권세를 독점했습니다. 순조비 순원왕후, 헌종비 효현왕후, 철종비 철인왕후가 모두 신 안동 김씨 출신이었으며, 이 시기 가문은 풍양 조씨, 여흥 민씨와 함께 조선 3대 세도가 가문으로 꼽혔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개혁 정치가 김옥균(金玉均), 의병장 김좌진(金佐鎭) 장군, 시인 김삿갓(金炳淵) 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신 안동 김씨는 정치·학문·문학·무장 등 다양한 방면에서 한국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안동 김씨 항렬표

안동 김씨 가문은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항렬표도 매우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항렬은 같은 세대의 후손들이 이름에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글자를 말하며, 족보와 함께 가문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구(舊) 안동 김씨 항렬표 (대동 항렬표)

  • 21세: ○源(원)
  • 22세: 榮(영)○
  • 23세: ○黙(묵)
  • 24세: 在(재)○
  • 25세: ○會(회)
  • 26세: 泰(태)○
  • 27세: ○植(식)
  • 28세: 容(용)○
  • 29세: ○敎(교)
  • 30세: 鍾(종)○
  • 31세: ○雨(우)
  • 32세: 秉(병)○
  • 33세: ○熙(희)
  • 34세: 基(기)○
  • 35세: ○鉉(현)
  • 36세: 洙(수)○
  • 37세: ○東(동)
  • 38세: 然(연)○
  • 39세: ○赫(혁)
  • 40세: 鎭(진)○
  • 41세: ○泳(영)
  • 42세: 根(근)○
  • 43세: ○炳(병)
  • 44세: 孝(효)○
  • 45세: ○鏞(용)
  • 46세: 澤(택)○
  • 47세: ○穆(목)
  • 48세: 熹(희)○
  • 49세: ○圭(규)
  • 50세: 鍊(련)○

신(新) 안동 김씨 항렬표 (강정표)

  • 22세: ○淳(순)
  • 23세: 根(근)○
  • 24세: ○炳(병)
  • 25세: 均(균)○ / 圭(규)○
  • 26세: ○鎭(진)
  • 27세: 漢(한)○
  • 28세: ○東(동)
  • 29세: 顯(현)○
  • 30세: ○年(년)
  • 31세: 鎰(일)○
  • 32세: ○求(구)
  • 33세: 模(모)○
  • 34세: ○然(연)
  • 35세: 培(배)○
  • 36세: ○銑(선)
  • 37세: 源(원)○
  • 38세: ○榮(영)
  • 39세: 思(사)○
  • 40세: ○埈(준)
  • 41세: 善(선)○
  • 42세: ○澤(택)
  • 43세: 植(식)○
  • 44세: ○煥(환)
  • 45세: 喆(철)○
  • 46세: ○鏞(용)

안동 김씨 족보의 의의

안동 김씨의 족보는 단순히 가계도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한국 사회의 역사적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구 안동 김씨는 무장과 충신을 중심으로, 신 안동 김씨는 세도가 가문으로서의 위세를 보여주며 각각 다른 색채를 띱니다. 족보 속 항렬은 가문의 정체성을 이어주고 후손들에게 조상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안동 김씨 종중은 정기적으로 족보를 편찬하고, 항렬자를 계승하며, 전국 각지에서 종친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혈연의 기록을 넘어 문화적 유산이자 정체성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결론

안동 김씨는 한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대한 가문입니다. 구 안동 김씨는 충절과 무공으로, 신 안동 김씨는 정치적 권세와 학문적 업적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항렬표는 세대를 잇는 규범으로, 족보와 함께 가문의 뿌리를 잊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안동 김씨 후손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지만, 항렬과 족보를 통해 조상과 이어진다는 자부심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가문의 이야기를 넘어 한국인의 뿌리와 전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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